기독교에서 성도를 향해 사용할 수 있는 단어로는 ‘제자’와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두 단어는 모두 예수님과의 관계를 내포합니다. 그러나 이 중에서 예수님과 가장 긴밀한 관계를 표현하는 단어는 바로 ‘제자’라는 단어입니다. ‘제자’라는 단어에는 학생과 선생의 관계가 암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택하신 열둘은 사도이기 전에 ‘제자’였고, 예수님의 공생애 3년 동안 이들은 ‘제자’로서 선생인 주님의 가르침 아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 동안 기독교는 성도를 향해 ‘제자’라는 단어보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를 고집하여 왔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존 스토트는 다음과 같은 말로 아쉬워합니다.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 ‘제자’라는 단어가 이후 수세기 동안에도 계속 사용되어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을 예수님의 제자로 인식하고 ‘제자 훈련’을 받아야 할 책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여더라면 하는 것이다.
(존 스토트의 <제자도>에서)
기독교가 그동안 ‘제자’라는 단어 대신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 예수님과 마땅히 가져야 할 선생과 학생간의 긴밀한 관계를 놓친 것은 물론 제자로써 삶을 등한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지속적인 세속화와 성숙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이에 대한 좋은 증거들일 것입니다.
구원이라는 특권을 누리기만을 원할 뿐 그 특권에 수반되는 책임은 등한히 하는 풍조가 현대교회 안에 만연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관 즉 ‘돈이며 다 할 수 있다’는 사고가 그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들은 비단 교회에서 훈련이나 기도회 등 모임을 개최해도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귀찮게 여길 뿐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됐지 무슨 훈련이냐?”라는 식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구원이 그렇게 쉬운 것일까요? 그런 태도와 자세가 과연 예수님을 믿는 것일까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복음 7:21-23).
제자답게 살지도 못하면서 “나는 구원받았다”라고 믿는 것이 바로 자신만의 착각인지는 왜 모를까요? 제자로 살지 않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