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사도신경에 있는 '공회'란 단어는 개혁교회에서 사용하기에 매우 애매한 표현입니다. 성경에서의 '공회'는 언제나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자들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마 10:17, 26:59; 눅 22:66; 요 11:47).
지난주에 이어 지금까지 우리가 교회 예배에서 사용하는 사도신경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the communion of saints)"라는 표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도신경의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모든 세상의 성도들이 서로 영적으로 함께 교제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 말의 원뜻은 모든 세상의 믿는 성도들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 죽은 가톨릭의 성인들을 가리킵니다. 이 표현은 지금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의 일반화한 표현입니다. 이 표현을 근거로 로마 가톨릭 교회는 죽은 성인들을 숭배 근거로 삼고 있기에 지금까지도 죽은 자들의 이름으로 기도는 물론 봉사하고 헌금하기도 합니다. 또한 가톨릭은 이 표현을 산자와 죽은 자가 교통하는 교리적 근거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적인 의미의 '성자' 또는 '성도'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모든 신자들(고전 1:2)을 가리키지만, 로마 가톨릭에서의 '성도'는 죽은 지 오랜 세월이 경과한 뒤에 특별 심의를 거쳐 서품 되는 죽은 자(복자, 성자)를 지칭하는 개념입니다.
이러한 의미로 사도신경에서 고백되어지는 것을 반대하는 개혁교회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가톨릭교회는 1517년의 개신교회의 종교개혁에 반대한다는 의도를 가지고 1545년부터 1563년까지 이탈리아 북부 트렌트와 볼로냐에서 ‘트렌트 회의’1)를 개최하고 이 회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는 성인들이 인간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고 있다"는 교리를 실재로 채택했습니다.
구약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죽은 자와의 접신행위를 가증하게 여기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죽은 자의 영혼은 하나님께 갑니다. 다시 말해서 죽은 자의 혼은 박수나 무당이 부른다고 해서 다시 돌아 올 수 없습니다. 이는 귀신들이 죽은 자의 영혼을 흉내 내어 현혹하는 것입니다. 그가 살아생전 성인이었든 성도이었든지 간에 죽은 사람을 부르는 그 어떤 비슷한 행위는 하나님께서 가증이 여기는 접신 행위입니다(레 19:31, 20:6, 27; 신 18:10-12; 사 8: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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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트렌트 회의(라틴어: Concilium Tridentinum)는 반종교개혁의 독특한 고백 성격을 지닌 회의며, 종교개혁으로 빠르게 개신교화 되고 있던 유럽을 재가톨릭화하려는 목적을 이루려는 회의였다. 이 목적은 유럽 대부분 지역에서 정치적, 군사적으로 수행되었고 이 때문에 전 유럽에 엄청난 폭력의 홍수를 유발하였다. 그로부터 400년이 지난 후, 교황 요한 23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준비하면서 트렌트 회의에서 반포한 교령들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단언했다.